그라운드시소 센트럴
서울 중구 세종대로 14 그랜드센트럴 3F
예전에 티켓을 구매했다가 사용 가능 날짜를 잘못 알아서 만료되고 다시 구매해서 다녀온 이경준 사진전: 원 스텝 어웨이. 서울역 근처에 위치해있어서 방문하기도 편했고 전시회 종료 일자가 가까워서 얼른 다녀왔다.
한참 인기가 많을 땐 사람이 많다고 해서 걱정되어 9시 50분쯤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전시회 종료일에 가까워져서 그런 것 같았다.
왼쪽 사진 뒤편에 물품 보관함이 있어서 이날 우산을 들고 갔던 터라 보관 후 편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또, 좋아하는 가수 죠지가 직접 오디오 가이드를 해주는 무료 서비도 VIBE에서 들을 수 있었다. 왜 죠지일까? 이건 전시회를 보면 알 수 있다!
10시 정각에 입장할 수 있었고, 주변 사람들 평이 좋아서 조금 기대했던 이경준 사진전: 원 스텝 어웨이. 이 전시는 도시의 패턴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진작가 이경준의 첫 번째 개인전이자 그라운드시소 센트럴의 개관작이라고 한다. 익숙한 도시 풍경을 멀찍이 포착하여 낯설고도 아름다운 장면들로 담아내는 이경준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전시. 또 작품 대부분 작가가 주로 생활해 온 서울과 뉴욕을 배경으로 곳곳의 일상을 담은 작품 250여 점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Chapter 1. PAUSED MOMENTS
첫 번째 챕터 'PAUSED MOMENTS'에서는 빛을 머금은 건물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나를 반겨줬다. 좋았던 건 단순히 사진으로만 창문에 반사된 빛을 표현한 것이 아닌 관람객들에게 더욱 드라마틱한 장면을 제공하기 위해 사진 뒤에서 빛을 비추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가가 의도하고자 했던 것을 관람객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던 게 그동안 다녀왔던 다른 사진전과의 차별점이었다.
퇴근길에 가끔 높은 건물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경준 작가는 이런 황금빛 순간을 포착하여 멋있는 사진들을 담아냈다.
이어서 황금빛 석양이 진 후 사람들이 바쁘게 집으로 돌아가는 도시의 모습은 담은 공간. 사진 속에 사람들은 누군가에게는 일터로, 누군가에게는 집으로 가는 길이지만 어둠 속에서 보이는 각자의 순간에 집중하는 모습이 담겼다고 한다.
어둠이 내려않은 도시엔 건물 속 각자 개인의 공간에서 빛을 밝히고 있었는데 나도 결국 저 건물 속 공간을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의 사진에서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렀을 때의 느낌이랄까?
Chapter 2. MIND REWIND
이경준 작가님이 바라보는 도시는 선과 면, 그리고 점으로 구성된다. 두 번째 챕터인 'MIND REWIND'에서는 건축물이 이루는 기하학적인 패턴, 그리고 그 안에 작은 점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같은 건물 다른 공간
이 작품은 건물의 패턴이 마치 윤슬 같아서 기억에 남았던 작품
건물의 선과 면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인 패턴을 담아낸 작품들
위 작품들은 건물 옥상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담고 있는데 옥상이라는 공간은 야외이지만 또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점이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왔다.
건물 사이로 들어오는 빛 아래 인물이 돋보이는 작품
건물의 기하학적인 패턴,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 단순히 우리가 지나다니는 건축물을 배경으로 하지만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사진들이었다.
작가는 길 위를 부지런하게 걷는 도시인의 정수리는 좌표를 이리저리 헤매는 점들의 집합 같다고 했다. 그 점들을 찍지만 거리 속 행인들은 카메라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작가가 점심을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다 시작한 기록들. 신호가 바뀌고 사람들이 오가는 사이, 무채색의 도로는 다양한 색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치 특정 장소가 날씨에 따라서 매번 풍경이 달라지는 것처럼 도로도 사람들로 인해 다양한 모습을 가지다는 것을 보여줬다.
Chapter 3. REST STOP
세 번째 챕터인 'REST STOP'에서는 숨 가쁘게 흘러가는 도시에서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과 시공간을 기록한 사진들을 소개한다. 특히 공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 내리쬐는 햇볕과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공원에 머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도심 속 공원에서 따듯한 햇빛을 받으며 쉬는 사람들의 모습
이 공간에서는 한쪽 벽면에서 공원에서 쉬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줘서 나도 해당 공간에서 같이 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공원이라는 열린 장소에서도 개인적인 장소를 찾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이 작품을 보면서 어디서 많이 봤던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다 바로 가수 죠지의 'Camping Everywhere'의 앨범 커버! 이경준 작가님은 뮤지션 '구원찬', '죠지'와의 앨범 커버 작업, 디자이너 브랜드 'Helmut Lang' 과의 콜라보레이션 제품 발매 등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고 한다.
조금 뜬금없지만 물속에서 수영을 하는 작품이 있었다. 내가 못 찾았는지 도슨트에서도 특별한 설명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던 작품.
놀 소음과 사건 사고로 가득한 뉴욕. 눈이 내리면 도시는 잠시 마비되지만, 오히려 고요한 평화가 찾아온다고 한다. 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강아지의 발자국이 만드는 또 다른 뉴욕을 만날 수 있다는데 이를 사진으로 담아냈다.
이 중 가장 따듯해 보였던 사진.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나가서 눈사람을 만들곤 한다 그럴 땐 모든 걸 잊고 그저 눈사람 만드는 데에 집중하게 되는데 사진을 보며 나도 같이 동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기분을 느꼈다.
멀리서 보면 차가운 눈 위에서 두 사람이 누워있지만 따스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오른쪽과 같이 가까이서 찍었을 땐 결국 흔들린 사진이다. 항상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 리뷰를 하면 아쉽게도 위와 같이 흔들린 사진이 마음에 들 때가 있다. 과거엔 이런 사진은 실패작이라며 삭제하곤 했는데 요즘은 사진이란 건 잘 찍고 못 찍고를 떠나 그 행복했던 순간을 담아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마치 이 작품처럼.
Chapter 4. PLAYBACK
전시의 마지막 챕터, 'PLAYBACK'에서는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조명한다. 이 공간은 하나의 대형 작품과 각 챕터에서 담지 못했던 작품들 그리고 관객의 고민을 담아낼 수 있는 장소로 이뤄져 있다. 위 작품도 조금 뜬금없지만 어떻게 찍은 걸까? 창문에 비친 건물의 모습을 담은 걸까?
작가의 시선에서 평범한 빌딩 숲은 기하학적 그래픽 패턴으로 비치고, 바쁜 도시인은 저마다의 일상을 이겨내는 강인하고도 평온한 존재로 기록된다. 작가는 '멀리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작은 점처럼 보인다'라고 말한다. 복잡다단한 무늬 속 자그마한 점에 불과한 저마다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마주하는 고민들 역시 사소하고 가벼이 느껴진다.
나는 고민이 너무 많아 남은 종이를 다 쓸까봐 적어내진 못했다. 아이폰 16을 살까 말까 하는 행복한 고민부터 내 미래에 대한 불안한 고민 등 우리는 모두 고민이 많으니까.
한 쪽 벽면엔 다른 공간에서 담아내지 못한 작품들이 작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중 눈에 들어왔던 작품. 이런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녀야 하는 게 아닐까? 나에게 깊은 최면을..
"나와 도시의 관계는 계속 변화하고, 시선 역시 변해간다."
항상 전시회를 다녀오면 기념으로 엽서를 구매하는데 아쉽게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엽서로 판매되고 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가볍게 관람하기 좋았던 이경준 사진전: 원 스텝 어웨이. 추석 연휴에도 전시를 연다고 하는데 다들 떠나버린 조용한 서울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전시인 것 같다. 특히 서울역 근처에 위치해있어서 기차 시간에 조금 시간을 내서 다녀오기 좋은 것도 장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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