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Tungh's
  • Tungh's
텅's 후기/공연&전시

프린트와 원화 사이, 아쉬움과 감동이 공존한 전시회 :: 워너 브롱크호스트: 온 세상이 캔버스

by Tunghs 2025. 6. 1.
반응형
그라운드시소 서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6길 18-8

 

 

부쩍 더워진 날씨, 전시회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시원한 실내에서의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서촌에 위치한 전시 공간 '그라운드시소'에서 열리고 있는 <워너 브롱크호스트: 온 세상이 캔버스>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전시장 입구에는 요즘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귀여운 키 링과 배지를 뽑을 수 있는 캡슐머신이 놓여 있었는데, 관람 전부터 소소한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였다. 

우연히 SNS에서 스쳐간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작품에서 다채로운 색감과 눈에 띄는 입체적 질감에 빠져들었고, 그 여운에 이끌려 얼리버드 티켓을 바로 구매했는데, 덕분에 가격적인 부담 없이 알차게 관람할 수 있었다. 금요일 오후에 방문해서 그런지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워너 브롱크호스트 (Werner Bronkhorst)

출처: 그라운드시소(https://groundseesaw.co.kr/product/detail.html?product_no=1286&cate_no=47&display_group=1#exhibitions)

워너 브롱크호스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나, 현재는 호주 시드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현대 미술가다. 그는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을 포착해 신선한 시각적 즐거움따뜻한 감동을 전하는 작품 세계로 주목받고 있다. 브롱크호스트의 작품은 거친 질감의 배경 위에 초현실적인 미니어처 인물들을 그려 넣는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기법은 평범한 일상이 지닌 서사와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SNS에서 11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중과도 활발히 소통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브롱크호스트는 “세상은 하나의 캔버스이고, 우리는 그 안을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라는 철학 아래 작품을 전개한다.

 

이번 아시아 최초 개인전인 <워너 브롱크호스트: 온 세상이 캔버스>에서는 원화 35점을 포함해 총 1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전시는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진, 영상, 판화(에디션), 설치 작품, 아카이브 자료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Section1. The LAB

워너 브롱크호스트는 갭이어(Gap Year) 기간 동안 호주에 정착하며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가구 제작의 남은 재료로 실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추상적인 배경 위에 초현실적인 미니어처 인물을 그려 넣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으며, 이러한 창작 과정은 현재 그가 'THE LAB'이라 부르는 작업 공간에서 계속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 갭이어(Gap Year)는 학업이나 업무를 잠시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과 미래를 탐색하는 시간을 뜻함.

전시장 관람의 시작점인 2층으로 향하면 그의 어린 시절 작업 공간을 재현한 듯한 특별한 공간이 펼쳐지는데 이곳은 단순한 설치물이 아니라 그의 창작의 시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인트로덕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새하얗게 페인트칠 된 벽면 틈 사이로는 무언가를 깊이 고민하며 구상 중인 10대 시절의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워너가 한국의 전시 공간을 처음 방문했을 때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화면상으로는 분명 입체적인 질감이 살아 숨 쉬는 듯 보였으나 실제로는 상당수 작품이 원화가 아닌 프린트된 판화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 전체를 둘러보는 내내 이 아쉬움은 계속해서 마음 한편에 남았고 특히 표면의 질감 자체가 감상의 핵심이 되는 이 작가의 작업 스타일에서 평면적인 판화는 알맹이 빠진 껍데기처럼 느껴져 진한 감동을 전달받기엔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아쉬움은 전시 초반인 본 섹션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느껴졌으며, 관람객이 작가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몰입해야 할 시점에서 다소 평면적이고 깊이감이 떨어지는 판화 작품들이 그 몰입감을 방해하고 흐름을 끊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작품 옆의 작은 태블릿에서 작가가 작업하는 영상이 나오는데 아크릴 물감으로 거칠고 때로는 부드럽게 표현한 표면 위에 그려진 미니어처 인물들을 실제로 봤다면 얼마나 그 그림에 깊이 빠져들었을까 싶어 자꾸만 아쉬움이 남는다.

한쪽에는 워너 브롱크호스트가 실제로 작업에 사용했던 다양한 도구들과 그가 직접 그린 미니어처 인물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조형물 외적인 요소로 각 작품에 설치된 조명도 아쉬움을 느끼게 했는데 전시의 몰입감을 높여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인 만큼 더욱 아쉬움이 컸다. 일부 작품에서는 조명이 균일하게 퍼지지 않고 그림의 일부분에만 집중되어 있었거나 비스듬한 각도로 설치되어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작가가 의도한 감정이나 메시지가 왜곡되거나 희석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Section2. Life On Canvas

워너 브롱크호스트가 기존과 다른 스타일로 시도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 그는 거칠고 쉽게 더러워지는 목탄으로 섬세한 작품을 완성하는 동시에, 굵은 텍스트를 더한 새로운 화풍을 선보이며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한층 더 확장해 나갔다고 한다.

이 섹션에서는 워너 브롱크호스트가 기존의 익숙한 화풍에서 벗어나 작가로서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감행한 결과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목탄으로 그린 작품들 옆에 대형 화면으로 워너 브롱크호스트가 직접 작업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Section 3. Forbidden Grass

Forbidden Grass 컬렉션은 푸르른 녹색 자연과 그 위에 어우러진 작은 인간들의 모습을 조화롭게 포착한 작품이다. 특히 골프나 테니스 같은 스포츠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치 있게 표현하며, 영국 런던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넓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서핑, 사파리, 하이킹, 트레킹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즐기며 스포츠 문화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졌고, 이러한 경험은 현재 그의 작품 구상과 제작에 있어 큰 영감이자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 섹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판화 작품보다는 원화가 조금씩 더 눈에 띄기 시작했으며 그것만으로도 작품의 깊이가 확연히 달라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마치 여러 겹의 페인트 층을 말린 뒤 잘게 잘라 엮은 듯한 조형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원화의 경우 물감의 두께와 조명에 따라 입체적으로 부각되어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에서도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다가왔으며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 특유의 방식대로 배경은 굵고 무거운 질감으로 먼저 채워지고 그 위에 조심스럽게 배치된 미니어처 인물들이 여백을 메워가며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이 눈에 보였다.

이 섹션은 이번 전시 중에서도 브롱크호스트의 본질적인 작품 세계를 가장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공간이었고 그간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채워줬다.

Section 4. Wet

WET 컬렉션은 바다에서 살아가는 두 가지 방식, 즉 서핑이나 항해 같은 역동적인 스포츠와 깊은 심연 속에서 평온을 찾는 잠수의 경험을 탐구한다. 작가는 물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유연하면서도 묵직한 성질을 통해 삶의 모순과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색감과 질감, 강렬한 대비와 자연스러운 조화를 통해 물이 주는 긴장감, 자유로움, 고요함을 섬세하게 담아냈다고 한다.

섹션 4의 공간 디자인은 바닥 타일과 수납장 그리고 벽면의 장식까지 모두 수영장을 연상케 하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 공간의 작품들은 두터운 아크릴 물감의 질감이 물결의 흐름이나 파도의 부서짐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게 활용되어 있어서 인상 깊게 관람할 수 있었다.

기존의 캔버스에 색을 얹는 방식과 달리 아크릴 물감 자체가 조형적 요소가 되어 독립된 캔버스 역할을 하는 작품들도 눈에 띄였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Portrait of an Artist>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인 <MOCKNEY>라는 작품은 워너 브롱크호스트 인생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 나도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눈여겨 본 작품 중 하나이다.

데이비드 호크니 <Portrait of an Artist>

전시장 바깥으로 나가면 한눈에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대형 설치 작품이 마련되어 있었다.

Section 5. Every Moment

마지막 섹션에서는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대표 컬렉션 ‘The Streets’, ‘White Lines’, ‘911 WHAT’S YOUR EMERGENCY’, ‘Forbidden Grass’, ‘WET’의 미공개 주요 작품들과,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신작 원화 여섯 점을 소개한다. 작가가 바라본 한국의 문화와 상징이 어떻게 표현됐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이 작품들은 모두 구매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전 섹션들에서 보았던 익숙한 주제들인 골프를 모티브로 한 녹색 필드와 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이 작품들은 도시 속 평범한 장면들을 꽃이 만발한 들판에서나 볼 법한 다채로운 색감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치는 일상의 단면들을 마치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화려한 캔버스 위에서 재탄생시켰다.

마지막 전시 작품은 앞서 섹션 1에서 프린트로 보았던 눈 덮인 스키장 풍경의 원화 버전이었다. 두껍게 쌓인 아크릴 물감이 실제 눈의 질감과 차가운 감각을 생생하게 전달해줬다. 다만 작품 감상의 몰입을 방해한 부분이 있다면 사진에서도 확인되듯이 조명의 위치가 다소 의도적이지 않은 듯한 각도로 설치되어 있어 오히려 작품의 분위기를 왜곡하거나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Out Moment

전시장을 나가기 전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브롱크호스트의 프린트 작품 위에 다양한 미니어처 스티커를 자유롭게 붙이며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다양한 프린트 중 특별히 눈에 띄는 작품은 없었지만 그나마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그림을 선택해 이것저것 붙여서 결과물은 만들어냈다.

Shop

눈에 띄었던 반찬고는 아이디어도 독특하고 디자인도 예뻤지만, 가격이 다소 부담스러워 구매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전시회 관람 후 빠질 수 없는 엽서를 한장 구매했다.

아크릴 물감의 질감과 섬세한 미니어처 인물들이 어우러진 작품들은 원화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었다. 프린트된 작품과 조명의 아쉬움이 남는 전시회였지만 할인을 받아 관람한다면 무더운 여름날, 가볍게 관람할 수 있는 전시회라고 생각된다. 

반응형

댓글